제목 [한겨레기사] 낯익은 곳에서 마주한 분단의 흔적 ‘분단 70년의 표상’ 사진전
작성자 센터지기 등록일 2019.12.09
[토요판] 기획 
‘분단 70년의 표상’ 사진전

도로에 세워진 거대한 방호벽
천변 산책길에 늘어선 참호
여행자 발길 가로막는 용치

언젠가 사라질 분단 구조물
59명이 전국 누비며 기록


방호벽은 어디에나 있었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풀로 덮인 낡고 거대한 콘크리트 옆을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친다. 성벽 같기도 하다. 군복 무늬 페인트를 칠해 한눈에 군사시설로 보이는 것도 있고, 정체를 감추려는 듯 예쁜 벽화를 그려놓은 것도 있다. 얼핏 보면 광고판이나 복고풍 건축물로 보인다. 이인협(38·사진가)씨는 “위화감을 느끼게 하는 건축물인데 너무나 자연스럽게 놓여 있었다”고 말했다. 방호벽은 ‘적군의 남하’를 막기 위해 전방에서 서울로 향하는 길목에 1970~1980년대에 집중적으로 설치된 군사시설물이다. 용도가 있는 것일까? 용도가 있다면, 없어지는 날은 올까?

한겨레교육문화센터 강재훈사진학교 졸업생 모임인 ‘사진집단 포토청’은 올해 초부터 ‘우리가 몰랐던 냉전의 구조물’을 찾아 전국 곳곳을 누볐다. 백령도에서 울릉도까지, 판문점에서 남해안까지 우리의 일상과 삶 주변에 자리한 ‘분단의 흔적’을 기록하기 위해서다. 지난달까지 6개 조 59명이 방호벽과 철책, 용치, 총안구, 참호, 방공호, 차량호, 경계초소, 포대, 진지 등을 렌즈에 담았고, 지난 4일부터 10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경인미술관 제1전시관에서 사진 전시회를 열고 있다.

포토청은 해마다 주제를 정해 사진전을 열어왔는데, 올해는 사진학교 20주년을 맞아 고민이 깊었다. 누구랄 것도 없이 지난해 12월 남과 북이 함께 비무장지대(DMZ) 감시초소(GP)를 폭파해 철거한 장면을 떠올렸고, ‘언젠가는 없어질(없애야 할) 군사시설 건축 구조물을 기록하자’고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사진학교 지도를 맡고 있는 강재훈 <한겨레> 기자는 “기이하고도 안타까운 풍경 중 하나가 우리 생활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각종 적 침투 방어용 군 시설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사진전 제목이기도 한 ‘분단 70주년의 표상’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없어서가 아니라 그동안 알아채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파트 단지 앞 창릉천변을 따라 걷다 보면 산책길에 꾸며놓은 구조물이 있거든요. 무심코 지나치곤 했는데, 참호였어요. 분단의 흔적을 찾는다고 돌아다니다 보니 그게 보이더라고요.”

서울 구파발에 사는 오정신(54·교사)씨는 구조물 반대편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거울 수만큼 하늘이 있습니다’라는 글이 적힌 거울로 가려져 있는 산책로 쪽과 달리, 고유번호가 적혀 있는 참호가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참호가 산책로를 따라 10여개 늘어서 있었다. 오씨는 “전쟁에서 쓰이는 참호가 서울의 내 집 근처에 있다니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안선영(49·갤러리 운영)씨는 군부대가 많은 경기도 포천에 가보려고 구리포천고속도로를 운전해 가다가 의정부의 대규모 신축 아파트 단지 앞 구릉에 있는 참호를 발견했다. 안씨는 “북쪽에서 내려오는 걸 감시하는 용도였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은 아파트에서 내려다보이는 참호다. 그는 이 사진 작업을 하기 전에는 ‘용치’가 무엇인지 몰랐다. 용치는 전차 등 군용차량이 지나가지 못하도록 기둥처럼 촘촘히 세워둔 구조물이다. 하천에 설치한 용치는 수해 원인으로 지적돼 제거하기도 한다. 포토청은 차량 통행용 다리 밑을 지나는 여행자의 길을 막고 있는 용치, 용치가 박힌 개울에서 물놀이하는 이들을 사진에 담았다. 안씨는 “전에는 인식하지 못했는데, 의외로 아주 낯익은 곳에서 이런 시설들을 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백홍기(46·잡지사 근무)씨도 지난 5월 늘 오가던 곳에서 분단의 흔적을 찾았다. “군 시설은 인터넷 검색을 해도 잘 안 나와요. 무작정 일산대교를 걸었어요.” 그가 찾은 것은 자유로변 둔덕에 있는 초소였다. 이 초소에 특별한 게 있을까? 그는 “도로 이름이 자유로잖아요”라고 답했다. 자유로는 경기 고양시 행주대교 북단에서 파주시 문산읍 임진각 자유의 다리까지 이어져 있다.

그런데 20대인 김혜리(28·대학생)씨는 방호벽, 참호, 초소 같은 단어가 “와닿지 않는다”고 했다. “전쟁을 겪지도 않았고 전쟁의 위협을 받은 세대도 아니”라서다. 그는 티브이 프로그램이나 영화 세트장에서 봤던 ‘반공·방첩’이라는 글자를 떠올렸다. “방호벽이나 참호가 전쟁 때 침입을 막는 예방책 같은 것이라면, 반공·방첩은 우리 국민들에게 이념을 심은 거잖아요. 그래서 오히려 더 폭력적으로 느껴졌어요.” 김씨는 지난 8월 전남 보성군 한 농촌 마을에서 ‘의심나면 다시보고 수상하면 신고하자’는 구호가 벽에 적힌 낡은 창고를 렌즈에 담았다. 인스타그램에 ‘반공 방첩’을 검색어로 넣어 찾았다고 한다. 주인 할머니는 ‘이런 걸 뭐하러 찍으려고 서울서 여기까지 왔냐’고 물었다고 한다. “가는 곳마다 ‘이런 걸’ 찍느냐고 묻더라고요. 옛날에는 일상적으로 이런 구호를 쓰면서 계몽했을 텐데, 이제는 흉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그게 지난 70년 동안의 변화 아닐까요?”

지난 3일 저녁 전시회 개막식에 모인 포토청 사람들은 이런 흔적들이 사라지길 바랐고, 한편으로는 사라지지 않길 바랐다. 철조망을 조금씩 걷어내고 있듯이 한반도에 평화가 오면 사라질 것들이고, 한편으로는 기억해야 할 흔적이기도 해서다. 백홍기씨는 “자유로에 초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만들었겠지만, 실제로 필요한 날이 오면 안 된다. 그건 전쟁이니까”라고 했다. 안선영씨는 “등산객 차량이 주차한 차량호(예비진지)가 산속에 계속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김혜리씨는 “전쟁은 잊지 말아야 할, 기억해야 할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흔적들을 다 없애기보다는 일상 속에 남겨두고 기억하면서 다른 인식을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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